성평등한 중랑을 위해 마을과 함께 활동하고 연대하는 중랑구성평등활동센터
프로그램 후기
몸으로 만나는 성평등- <몸, 차별을 녹이다> 1강 후기

<몸, 차별을 녹이다>는 장애와 비장애,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말들이 그어온
딱딱한 선을 서로의 체온과 감각으로 천천히 녹여보려는 시도입니다.
중랑구성평등활동센터와 변화의월담이 함께 기획한 이 움직임 워크숍은,
몸을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고 연결하는 언어로 다시 바라보는 자리예요.
이곳에서는 누구의 몸도 비교되지 않고, 어떤 움직임도 틀리지 않아요.
다정한 손길과 천천한 호흡 사이, 우리는 조금씩,
서로의 몸이 지닌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4월 12일, 벚꽃이 활짝 핀 중랑캠핑숲에 참가자분들이 하나둘 모였습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변화의월담’의 리조와 수민이 교육을 맡아주셨습니다.
작년 반응이 워낙 뜨거워서 그런지 60명이 넘는 분들이 신청해 주셨어요.
그중 아쉽게도 인원 제한으로 21분과 함께 워크숍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몸은 나선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우리는 흔히 몸을 곧은 직선처럼 생각하곤 하지만,
사실 우리의 몸은 나선이에요.
신경도, 뼈도, 근육도, 심지어 살의 흐름까지도
모두 감기고 흐르는 곡선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지요.
그래서 몸은 직선적으로 명령하거나 밀어붙여선 풀리지 않아요.
오히려 몸은 천천히, 돌듯이, 감듯이 다가갈 때
스스로 반응하고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이날의 마사지는 바로 그런 나선형의 감각을 깨우고
나선형으로 몸의 긴장을 이동시키는 작업이었어요.

워크숍의 시작, 리조는 우리에게 조용히 질문을 던졌습니다.
마사지란 무엇일까요?
피로를 풀기 위한 기술? 누군가에게 받는 수동적인 돌봄?
리조는 마사지를 타인의 '삶의 질감'을 읽어내는 적극적인 참여로 정의했어요.
굳어진 어깨, 힘이 들어간 허리, 쉽게 풀리지 않는 턱 근육 속에서
"이 사람은 어떤 긴장을 품고 살아왔을까, 얼마나 오랫동안, 이걸 혼자 감당해왔을까"
하는 연민의 감정이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그렇지만 리조는 강조했어요.
우리의 마사지는 피로를 ‘풀어주는’ 기술이 아니라, 함께 '머무는' 연결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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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은 근육을 억지로 힘을 줘 누르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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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년 간 그 사람 몸에 쌓인 긴장을 단 몇 분 안에 해결하려 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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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으로 단단해진 상대의 질감의 경계를 조금씩 이동시켜 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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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동시에 그 몸이 살아온 삶을 듣고, 이해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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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정말 힘들었구나” 하고 다정히 말하듯 타인의 질감에 응답하는 것
완전히 낯선 누군가의 따뜻한 손길이 어깨에 조심스럽게 머물던 그 순간, 눈물이 고였다는 분도 있었어요.
그 손길이 꼭 말 같았다고요.
아무 말이 없었는데도, 오래 눌려 있던 감정이 조용히 풀리는 느낌이었다고.
마사지가, 접촉이, 결국엔 이해의 감각이 될 수 있다는 걸 서로의 몸으로 배운 시간이었어요.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건,
마사지하는 사람이 어떻게 상대의 몸과 '눈높이'를 맞추는가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목을 구부려 위에서 내려다보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내 몸을 열고, 골반의 중심을 바꾸고, 다리에 무게를 실어
내가 그 사람과 같은 높이에 머무를 수 있도록 내 자세를 바꾸는 것.
그건 단지 마사지를 더 잘하기 위한 자세 조정이 아니라,
돌봄의 윤리, 접촉의 정치, 그리고 관계를 맺는 태도에 대한 질문이기도 했어요.

워크숍 중, 리조는 느닷없이 이렇게 물었어요.
어깨란 무엇일까요?
순간 웃음이 퍼졌지만, 이 엉뚱한 질문은 우리가 놓치고 있던 중요한 감각을 데려왔습니다.
용마산과 아차산 사이에 분명한 선이 없듯, 우리의 몸도 사실 경계가 없는 유기체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끊임없이 그어놓죠.
어디가 어깨고, 가슴이고, 배인지.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은 어디인지.
장애와 비장애, 남성과 여성의 선은 또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
그 모든 경계는 사실,
우리가 만든 인위적인 분류일 뿐이라는 것.
그 선들엔 실체가 없습니다.
그저 사회가 어떤 언어로 몸을 규정해왔는지를 보여주는 일종의 좌표계 같은 것일 뿐이지요.
예를 들어 ‘수면장애’라는 말도 불면의 고통이 새롭게 생겨난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을 특정 이름으로 묶어 '장애'로 진단하게 된 것이 최근의 일이에요.
몸이 경험하는 수많은 감각과 상태들은 언제나 있었지만,
그중 어떤 것만을 '질환'으로 명명하게 되면서 장애라는 경계도 유동적으로 형성돼 온 것이지요.
또 요즘 자주 듣게 되는 말, ‘라운드숄더’, ‘거북목’ 같은 표현들.
우리는 그런 말을 통해 몸을 쉽게 ‘틀어진’ 것으로 진단하곤 합니다.
교정해야 할 대상, 바로잡아야 할 형태로요.
하지만 질문을 조금만 바꿔보면 어떨까요?
왜 우리는 그렇게 어깨를 말아쥐고 살아야 했을까
왜 그 방향으로 고개를 숙이고, 등을 웅크릴 수밖에 없었을까
그 자세가 되기까지 내 몸은 어떤 삶을 버텨왔던 걸까
고치려는 시선을 잠시 멈추고, 내 몸을 조금 더 다정하게 바라보는 일.
그게 어쩌면 우리 몸과 '연결'되는 첫걸음 아닐까요.

이번 시간에는 조금 색다른 방식의 마사지를 경험해보았어요.
손이 아니라, ‘로프’를 활용한 마사지였는데요.
단순히 묶는 것이 아니라, 몸과 몸 사이에 또 하나의 감각 도구가 생긴 느낌이었어요.
한 사람이 로프로 상대의 움직임에 제약을 주면,
다른 한 사람은 그 제약 안에서 몸의 길을 찾아가며 천천히 빠져나오는 움직임을 연습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게 단순한 ‘탈출’의 움직임이 아니라는 점이에요.
상대를 이기기 위한 몸싸움이 아니라,
상대가 만든 제약과 내 움직임이 서로를 읽고 반응하는, 아주 섬세한 상호작용이었어요.
마치 손끝으로 서로의 긴장을 느끼며 했던 마사지처럼요.
이 로프 마사지에서는 몸의 모든 감각을 열어두는 것이 중요했어요.
내가 어떤 방향으로 기울어지고 있는지, 상대는 어디에 힘을 주고 있는지,
몸 전체를 안팎으로 읽고, 느끼고, 반응해야 했죠.
우리가 흔히 말하는 ‘중립 상태’란, 사실 그저 편안한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었어요.
제약과 자유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균형을 잡고 있는 역동적인 상태였어요.



이번 워크숍을 통해 우리는 경계가 고정된 선이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는 감각이며
몸과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조율되고 확장되는 과정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고 참여자들은 말했습니다.
그 경계를 따라 움직이다 보면, 나의 자아 역시 더 넓고 유연하게 열릴 수 있다는 것도요.
그리고 '성평등'에 대해 한마디 말도 없이 평등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게 됐다고도요!
움직이는 경계, 과정으로서의 경계, 그리고 확장된 자아를 경험하게 해준
변화의월담에 고마운 마음을 담아,
참여자들은 서로 진심이 꾹꾹 담긴, 진한 포옹을 나누며 따뜻하게 귀가했습니다.
그러면, 4월 19일에 2강으로 다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