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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 후기
<디지털 공간 속 청소년 집단과 만나기> 1강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에서'
작성자
중랑구성평등활동센터
작성일
2026-09-21 11:58
조회
6

9월 14일 저녁 디지털문화시민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기획된 <디지털 공간 속 청소년 집단과 만나기> 특강의 1강을 진행했습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에서’를 주제로,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활동가 한정민 강사님과 함께했습니다. 특강 안내가 올라간 지 일주일 만에 정원인 100분이 신청해주실 정도로 관심도 뜨거웠는데요. 그만큼 빠르게 변화하는 디지털 환경 속에서 청소년들은 무엇을 보고, 어떤 관계를 맺으며, 어떤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는지. 청소년들이 실제로 살아가는 디지털 세계를 이해하고, 그 안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행동양식과 관계를 고민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날 강의에서 중요하게 다뤄진 질문은 ‘우리는 지금 청소년들이 살아가는 세계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였습니다. 청소년에게 혐오표현을 해서는 안 된다고, 디지털성폭력은 범죄라고, 성적 행동에는 동의가 필요하다고 가르치는 것은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옳은 말을 반복해서 알려주는 것만으로 실제 청소년들의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한정민 강사님은 청소년의 행동만 떼어놓고 문제 삼기보다 그 행동이 만들어지는 환경부터 들여다봐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청소년들이 왜 그럴까”라는 질문의 답을 개인에게서만 찾지 않고 사회구조 속에서 살펴보는 것입니다. 강의에서 강조된 ‘사유는 구조적으로, 해결은 미시적으로’라는 말처럼, 청소년을 둘러싼 환경은 넓게 바라보되 실제 교육과 상담에서는 한 사람에게 닿을 수 있는 구체적인 언어와 개입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가장 먼저 지금의 청소년들이 살아가는 사회와 그 안에서 형성되는 정서를 살펴봤습니다. 노력하면 성장하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가 이전만큼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세대입니다. 강의에서는 과거에는 수련과 동료애를 통해 성장하고 세상을 구하는 주인공이 많았다면, 최근에는 이미 망가진 세계에서 재능과 운으로 살아남는 주인공이 많아졌다는 애니메이션의 변화를 예로 들기도 했습니다. 내가 노력한다고 세상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무력감, 이미 주어진 조건과 서열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감각이 더 익숙해진 것입니다. 그런 청소년에게 ‘성평등한 사회를 함께 만들어가자’는 변화의 언어 역시 생각보다 멀게 들릴 수 있습니다.

디지털 환경 역시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고 있습니다. 몇 번의 클릭만으로 성적 콘텐츠에 접근하고, 알고리즘은 비슷한 콘텐츠를 계속 추천합니다. AI 캐릭터와 원하는 관계와 상황을 만들어가는 콘텐츠도 등장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보지 마”, “하면 안 돼”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이미 디지털 콘텐츠가 일상의 일부라면, 무엇을 차단할 것인가를 넘어 자신이 접한 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를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에서’라는 제목처럼, 성적 관계를 단순히 ‘동의를 받았는가, 받지 않았는가’라는 요건으로만 가르치는 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실제 관계에서는 같은 행동을 두고 서로 기대했던 것과 받아들인 것이 다를 수 있고, 뒤늦게 불편함을 깨닫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 경험과 감정을 말할 수 있는 언어를 갖는 것입니다. “나는 그때 불편했어”, “그 행동은 싫었어”, “다음에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라고 말하고, 상대도 그 말을 듣고 자신의 행동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런 소통의 언어가 충분하지 않은 것이 오늘날 청소년들이 마주한 현실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불편함과 상처가 단지 ‘불편했다’는 말만으로는 충분히 들리지 않고, 그것을 ‘폭력’으로 규정하고 상대를 ‘성폭력 가해자’로 호명하거나 신고·고소의 언어로 옮겨야만 비로소 자신의 경험이 인정된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이는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고 관계를 조정할 다른 언어와 방법이 부족한 데서 오는 무력감의 표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단순히 성적 동의의 기준과 요건을 잘 지키도록 가르치는 것을 넘어, 자신의 욕구와 불편함, 경계를 말하고 상대의 말을 들으며 서로의 행동을 조정해나갈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결국 이날 강의는 청소년에게 얼마나 많은 ‘정답’을 알려줄 것인가보다 청소년에게 어떻게 말을 걸 것인가를 고민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강사님은 교육의 목표가 모든 청소년을 ‘성평등 활동가’로 만드는 데 있지 않다고 강조했습니다.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일방적으로 전달하기에 앞서, 청소년들이 어떤 디지털 환경과 또래문화 속에 있는지, 그 안에서 자신을 어떤 위치에 놓고 있는지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야 혐오와 폭력적인 행동을 줄이고 자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게 하는, 실제로 작동하는 개입도 가능해집니다.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을 먼저 꺼내놓기보다, 지금 청소년에게 어떤 말이 들릴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것. 청소년 스스로 자신이 놓인 환경과 위치를 살피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행동을 돌아볼 수 있도록 돕는 것. 이번 강의는 변화하는 디지털 환경 속 성평등교육과 디지털문화시민교육이 어디에서부터 출발해야 하는지 생각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2강도 기대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