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평등한 중랑을 위해 마을과 함께 활동하고 연대하는 중랑구성평등활동센터
프로그램 후기
여성의 날 기념 워크숍:보드게임으로 만나는 성평등 후기
매년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입니다.
여성들이 사회, 경제, 정치 전반에 걸쳐 얼마나 많은 것들을 쟁취하였는지 함께 축하하고 기념하는 날이지요(1975년 UN 지정).
지난 3월 14일 오전 10시, 중랑구성평등활동센터는 여성의 날을 맞이해 기념 워크숍을 준비했습니다.
‘이지혜 게임’이라는 보드게임을 함께하면서, 참여자들이 쉽게 성평등 관점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워크숍입니다.
워크숍의 전반적인 진행은 가치성장과치유센터의 백윤영미 선생님께서 맡아주셨습니다.
선생님은 심리상담 및 트라우마 치유 전문가로, ‘부캐’로 성인지 감수성 트레이너, 극작가, 번역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계세요.
작년 여성의 날 기념 월경워크숍에 함께 해주셨을 때, 여성의 삶을 깊이 공감하고 에너지를 전하는
선생님의 힘 덕분에 참여자분들이 오랫동안 여운이 남았습니다.
워크숍은 참여자들의 서로 인사로 시작되었어요. 자리에서 일어나 낯선 이에게 다가가 인사를 나눕니다.
인사를 나누는 반경이 점점 넓어졌고, 참여자들은 오늘 처음 만나는 이들과 같은 모둠으로 자리를 앉게 되었습니다.
“과연 우리는 오늘 어떤 이야기를 나누게 될까요?”
자리에 앉아 본격적으로 ‘이지혜 게임’에 관한 소개를 듣습니다. 백윤영미 선생님은 2020년에 이 보드게임 개발자를 찾아가 인터뷰하셨다고 해요.
이렇게 좋은 게임을 만든 분이 어떤 분일까 궁금해서요.
그때 개발자와 나눈 이야기를 살짝 전해주시며, 이지혜 게임이 어떤 게임인지 말씀해주셨습니다.
‘이지혜 게임’의 목표는 생존이에요.
이지혜라는 한 여성이 태어나서 죽는 그날까지 일생 겪는 수많은 성차별 에피소드 사이에서, 같은 모둠으로 앉은 한 팀은 이지혜를 살리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사람으로 사는 데 지켜져야 하는 것들(감수성, 순응도, 자존감, 사회성)과 줄여야 하는 위험(스트레스) 점수를 다뤄야 하지요. 그렇지 않으면 이지혜는 죽고 말아요.
성차별 에피소드는 어떤 한 연령대에 치우쳐 있지 않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유소년기, 청년기, 중장년, 노년기를 거쳐 죽을 때까지 고루 분포해 있어
여성의 삶을 위태롭게 만듭니다.
워크숍에 참여하는 모든 팀은 과연 각각의 이지혜를 살릴 수 있을까요?
이지혜들의 삶으로 함께 들어가 봅니다.
6명이 한 팀이 되어 이지혜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에피소드 카드를 뒤집으면 이지혜가 시기마다 겪는, 어떤 선택을 해야만 하는 사건이 등장하는데요. 한 장 한 장 뒤집을 때마다 참여자들의 탄식이 이어집니다.
결정하기가 어려워요. 그럼에도 자신이 맡은 역할에 몰입해서 의견을 피력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상황이 있어요.
청년기의 이지혜는 혼자 살고 있습니다. 배달음식을 시켜 먹었던 어느 날, 배달기사로부터 개인적인 연락을 받게 됩니다. ‘아까 배달하면서 봤는데 예뻐서 마음에 들었다. 연락하고 싶다’라고요. 이지혜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고민합니다. 답문으로 정중히 거절해야 하나? 남자친구에게 사실을 알려야 하나? 개인정보 유출로 배달 업체에 컴플레인을 걸어야 할까? 아니면 배달기사 연락처를 차단할까? ... 여러분이 이지혜라면, 혹은 이지혜의 가까운 지인이라면 어떻게 행동할 것을 선택하실 건가요?
이외에도 다양한 사건들이 드러날 때마다 참여자들은 기시감을 느낍니다. “저도 이랬던 적 있는데...”하며 말끝을 흐리거나 구구절절 설명하는 분,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어쩔 줄 몰라 했던 당혹감을 떠올리는 분도 있었어요. 한두 명의 이야기가 아닌 다수의 여성이 공유하는 상황들. 여성 본인의 경험이 아니더라도 방송매체나 주변에서 흔히 들어서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일들이 카드에 적혀 있었습니다. 이는 개인의 잘못으로 일어난 한 명의 불행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반복해 벌어지는 폭력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성차별적 사회를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까요?
게임이 끝난 후 다행히도 모든 팀의 이지혜는 생존했습니다만, 참여자들은 생존 자체로 즐겁지 못했어요.
아마 게임 속 이지혜의 혼란과 고민을 공유한 것 때문이겠죠?
게임에서 나온 결과, 즉 이지혜의 일생을 눈앞에 두고, 우리는 2부를 시작하였습니다.
2부에서 우리는 이지혜의 인생 이력서를 정리하고, 문제의 나무를 함께 그리고 발표하였습니다. 팀마다 비슷하지만 모두 다른 삶을 구성해왔지요.
어떤 팀은 점수가 깎이더라도 지혜가 주체적인 삶을 살기를 바라며 목소리 내는 일에 거침이 없었고요.
다른 팀은 생존만을 목표로 문제 앞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소극적인 반응으로 일관하기도 했습니다.
또 다른 팀은 그 둘 모두를 오가며 오락가락한 삶의 모습을 보여주었어요. 다양한 점수 분포, 그에 기반한 평가들이 오갔어요.
그러나 중요한 건 이지혜를 위한 삶에 오답은 없었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참여자 소감을 나누고, 옆에 있는 ‘이지혜’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서로 건네보았어요.
참여자들은 각자의 삶에서 진작 만났을 자신만의 이지혜를 눈앞에 두고 말을 이었습니다.
모두의 마음 깊은 곳부터 우러나오는 진심에 위로받고, 참여자 몇 분은 눈시울을 붉히셨습니다.
이번 이지혜 게임을 함께하면서 답답하기도 했지만, 참여자들은 같은 문제의식과 관점을 공유하는 동료들을 만났고
또 우리 안의 연결감을 충만히 누릴 수 있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백윤영미 선생님께서 제안해주셨던
이지혜 게임을 기반한 역할극도 함께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그때까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 우리가 차별적인 상황 앞에서도 지지 않고 치열하게,
동시에 자신을 잘 돌보며 지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참여자들의 이야기를 나누며 후기글을 마무리합니다.
“실제로 겪었던 일들이 있었어요. 이를 이야기하면서 과거로 돌아가는 기분이 들었는데, 또 치유 받는 기분도 들었습니다.”
“지혜의 선택을 함께 고민하지만, 결과는 전혀 예측하지 못한 모습이어서 혼란스러웠어요.
매일 성차별적인 사회에서 어떻게 해야 좋을까 자기검열하는 자신이 떠올랐습니다. 게임이 우리 현실과 매우 가까이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바쁘게 살았던 삶 속에서 여유를 가지고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돌아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이지혜의 삶은 사지선다였지만, 우리의 삶은 사지선다가 아님을 기억하고 더 많은 선택지를 그려봅니다.”